단양 죽령산신제, 지역 문화유산과 함께한 2024년 가을 맞이 제례

단양군수와 주민들, 죽령산신당에서 지역의 안녕과 번영 기원

산신제 참여 기념


지난 14일,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죽령산신당에서 ‘2024년 추계 죽령산신제’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김문근 단양군수를 비롯한 지역 주민과 관계자들이 참석해 단양의 오랜 전통문화를 기리고 지역사회의 결속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죽령산신제는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열리는 제례로,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자리이다.


죽령산신당은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된 역사적인 장소로, 죽령산신으로 불리는 ‘다자구 할머니’를 기리는 의미 있는 제례가 이곳에서 거행된다.

김문근 단양군수는 이날 행사에서 “죽령산신제는 단양의 전통과 역사적 가치를 상징하는 중요한 행사이며, 지역 주민들에게는 결속을 다지고 자긍심을 고취하는 기회가 된다”며 “앞으로도 이 전통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후대에 전승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죽령산신제와 같은 제례는 단양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사회의 연대를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언급하며, 앞으로도 이를 통해 단양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 보존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주민들에게 전통문화를 재확인하고 공유하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방문객들에게는 단양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군수의 참여와 발언은 지역사회 내에서 전통 행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주민들과 함께 단양의 문화를 공유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죽령산신제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보면, 죽령사당과 죽령산신제는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에 위치한 죽령산신당에서 매년 거행되는 중요한 제례이다.


이 제례는 죽령산신으로 불리는 '다자구 할머니'를 기리며, 지역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봄과 가을에 각각 춘계제와 추계제로 열리며, 죽령산신당은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된 바 있다.


죽령산신제는 조선 중기에 관군이 죽령 지역에서 도적 떼를 소탕하면서 큰 공을 세운 다자구 할머니의 전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다자구 할머니는 도적 소굴에 숨어 그들과 동행하면서 정보를 얻었고, "다자구야!"라고 외쳐 매복한 관군이 기습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다자구’라는 이름은 "다 잔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며, 도적들이 취해 잠들었을 때 관군이 일망타진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이에 따라 다자구 할머니는 마을과 나라를 지킨 지혜롭고 용감한 인물로 신격화되었고, 죽령산신으로 모셔져 마을 주민들에게 존경과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죽령산신당은 처음 건립된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사당은 1948년 3월 8일 주민들의 성금으로 재건된 것이다.


죽령산신당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산 49-9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에 모셔진 위패에는 ‘죽령산신지위(竹嶺山神之位)’라고 새겨져 있다.


과거에는 국가에서 봄과 가을에 직접 제사를 지냈으나, 조선시대에는 ‘죽령사(竹嶺祠)’라는 사당을 지어 관에서 주관하는 국가 제례로 자리잡았다.


현재는 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매년 3월과 9월에 정기적인 제례를 진행하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죽령은 해발 689m에 위치한 고개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서울과 영남 지역을 잇는 주요 교통로였다.


이 고개는 서울-춘천-원주-영주(풍기)-안동-의성으로 이어지는 경로의 일부로서, 소백산맥의 험준한 지형 속에서 형성된 고갯길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에는 소백산맥을 기준으로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막기 위한 자연 방어선이자 국경선으로 기능하였다.


후삼국시대와 고려 후기에는 태봉과 고려가 영남 지역으로의 진출을 도모하며 죽령을 거점으로 삼았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죽령을 넘어 관군과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통신사가 일본에서 귀국할 때 지나던 사행길로도 사용되었다.

이처럼 죽령 고개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중요한 통로로 기능하였으며, 이러한 험난한 지형과 이동의 위험성을 감안할 때, 주민들은 죽령의 수호신인 다자구 할머니를 통해 무사안일을 기원하였다.

다자구 할머니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여 도적을 소탕함으로써 마을을 지켜낸 영웅적인 존재로, 그 공덕을 인정받아 신격화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기리기 위해 죽령산신제를 거행하며, 죽령산신인 다자구 할머니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섬기고 있다. 현재도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주민들과 관계자들이 모여 제례를 올리며 마을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한다.

죽령산신제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


태종 14년(1441년) 예조에서 산천 사전제도를 정비하면서 죽령산이 소사(小祀)로 등재된 기록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죽령산신제는 조선 초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실제로 2021년에 죽령산신당 근처 용부원리사지의 발굴 조사 결과, 이곳의 유적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걸쳐 운영된 것으로 밝혀지며 죽령산신제의 오랜 전통을 확인하게 되었다.

죽령산신제는 단순한 전통 제례를 넘어서 마을의 오랜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간직한 중요한 의식으로 자리잡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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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