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넷과 어른 다섯, 충주 북쪽 끝자락 걷다. 11월 정기 나들이
어른 다섯, 아이 넷, 아홉 명이 걸었다.
날씨도 우리 편이었다. 엄정 소재지까지 걷고 거기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지만, 아이들이 걷기에 무리가 될 것 같아서 야촌, 야동에서 멈췄다. 잠시 시내버스에게 외면당하고 동막 정류장까지 가서 2시 5분 시내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왕돈까스가 돈까스 두 장인 줄 알았다면, 그냥 돈까스를 먹었을 것이다. 짜장면 곱빼기보다 많았던 늦점심을 꾸역꾸역 먹고는, "다음에는 절대 왕돈까스 안 시킬 거야"를 결심했다.
8시 30분에 시립도서관 건너편 시내버스 정류장에 모였다.
<千里忠州> 11월 정기 나들이다. 10분을 기다렸다가 353번 외촌행 시내버스를 탔다. 8시 40분이다. 새로 투입된 전기버스였다. 따라나선 아이들 넷은 맨 뒤로 몰려 앉았다. 매번 시내버스를 타면서 덤으로 얻을 수 있는 풍경 보기의 재미를 느끼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8석 시내버스의 절반을 차지했다.
소태 외촌행 시내버스는 1시간 반을 가야만 종점에 도착한다.
충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시계를 벗어나지 않는 중에 제일 긴 노선 중의 하나다. 목계를 지나며 다음 주말(11/16, 토)에 예정된 <충주 물길 따라가기> 노선과 겹치는 곳이 있어서 어디에 정차해서 사람들을 내리게 하고, 막흐레기 여울을 볼 수 있는 길을 구상하며 지났다. 구룡리 송전마을에서 회차한 시내버스는 가을길을 내달리며 소태면을 둘로 가르며 충주 북쪽 끝자락으로 안내했다.
내가 매일 다니는 야현 골목길 담장에 넝쿨진 호박잎이 멀쩡하기에 아직 서리가 내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상강(霜降, 10/23)도, 입동(立冬, 11/7)도 지났기에 ‘날씨 참 요상하다!' 정도로 여겼었다. 353번 종점인 외촌에 내렸더니 길가를 뒤덮은 칡넝쿨이 거뭇하다. 된서리를 맞은 까닭이다.
장난스럽게 "강원도에 잠깐 갔다 오자"고 해놓고는 또랑을 건넜다. 다리는 지났다. 구룡리 송전마을 회차 지점에서 시내버스를 탄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는데, 외촌에서 내리자마자 접때처럼 강원도로 간다. 아마도 귀래에 사시는 듯한데, 엄정의 내창장을 이용하시는 것 같다. 잠깐 가자고 했더니 앞서 가는 아이들은 계속해서 강원도로 갈 생각인 것 같았다. 길을 모르니 그랬겠지만, 길은 또한 걷는 이에게 그냥 걷게 하는 마력이 있기도 하다.
귀래 소재지로 가는 아이들을 돌려세우며, 소태재를 1차 목표로 되돌아섰다.
네이버지식백과에 따르면, 소태재는 충청북도 충주시의 소태면 구룡리 솔밭말과 화룡골에서 외촌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지명은 소태면 구룡리 · 야동리 · 양촌리에 걸쳐 있는 골짜기인 소탱이골[省台陽谷]에서 비롯되었다. 일명 소댕이재, 소탱이고개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구룡 휴게소 부근의 소태재 용허리 거리는 산의 형태가 용의 허리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용허리라고 부르고 있고, 신작로를 개설할 때 피를 흘렸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걸을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이 화장실 문제다.
소태 외촌의 경우도 애매하다. 다리 건너 작은 숲 공원처럼 꾸며놓은 곳이 있는데, 간이화장실 하나 없어서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어딜 가나 깃발 세 개가 나부끼는 곳이 마을회관이다. 왼쪽에 외촌마을회관이 있지만, 잠겼다. 마을회관 옆집에 부탁해서 화장실 사용을 허락받고, 아이들의 화장실 문제를 해결했다.
소태재는 높지는 않다.
굴이 뚫려서 일부러 소태재를 넘는 차를 제외하면 이용도 뜸하다. 마침 가을을 탐닉하는 바이크족들의 오토바이 굉음이 들렸고, 순간 지나갔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으니 타작한 뭔가를 넘겨 말리느라 길 절반이 점령되어 있다. 내게야 정겨운 풍경이지만, 아이들 눈에는 낯설 것이다.
소태 외촌을 11월 걷기의 출발점으로 잡은 이유가 있다.
공교롭게도 10월에는 현재의 충주 동쪽이 되는 목벌에서 마즈막재까지 걸었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는 옛 충주의 동쪽 끝에서 충주로 들어오는 첫 고개인 모녀현을 넘었다. 그렇게 충주의 동쪽 끝점을 10월에 걸었다면, 이번에는 충주의 북쪽 끝에서 11월에 걸어볼 요량으로 소태 외촌행을 택했다.
1997년에 충주의 동제를 조사한 일이 있다.
그때 소태 외촌의 동제는 충주에서 유일하게 소 한 마리를 제물로 썼던 곳이다. 당시에는 비용 때문에 소머리를 썼지만, 소를 제물로 썼던 흔적이 남아있던 곳이어서 남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또한 산골 오지에서의 삶을 위한 행위가 얼마나 절박했던가를 생각하게 했던 곳이기도 하다. 동제에 소를 제물로 썼던 마을이라는 얘기를 해주고 소태재로 오르는 오르막길을 걸었다.
소태재 중간쯤의 오른쪽으로 그럴듯하게 조경을 해놓은 너른 곳이 있다.
그곳 끝에 서면, 귀래 소재지가 한눈에 보인다. 멀리 양안치고개까지 골짜기에 들어앉은 귀래, 원주와 충주의 완충 구간이고, 널판을 걸쳐 다리를 놓아 너더리로 불렸던 곳, 손짜장을 잘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두세 번 들렀던 곳, 양안치고개를 양아치고개라고 불렸던 곳, 지금은 충주 원주 간에 고속국도가 놓여서 그냥 지나치는 외딴 곳으로 다가왔다.
나만의 감회를 잠시 떠올리고 맨 뒤에 서서 소태재에 올랐다.
소태재 팻말 옆에서 단체 사진 하나를 남기고 잠시 숨을 돌렸다. 거기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새로 뚫린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는 차 바퀴의 굉음이 골짜기 양쪽을 때리며 시끌시끌하다.
한 모퉁이 돌아서면 왼쪽으로 주차된 차줄이 길다.
거기 돌광산 직원들이 주차해 놓은 것인데, 주말이어서 그런지 전에 보았던 것보다는 짧다. 그럼에도 25톤 트럭은 돌을 실어나르느라 계속해서 들락거린다. 광산 입구에서 구룡저수지까지 돌을 실어나르는 트럭 때문에 주의를 요하는 구간이다. 무겁기 때문에 트럭 운전수 입장에서는 길 걷는 사람이 왠수 같을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시키고 조심조심 걸었다. 잠깐 긴장하며 내려와서는 울타리가 뚫린 구룡저수지 뚝방으로 들어갔다.
어제는 낚시꾼이 없었다.
전에 걸을 때는 너댓 명의 낚시꾼이 죽치고 있었는데, 저수지 물이 빠져서일까? 뚝방에 간식을 쏟아 놓았다. 초입에 저수지를 만들면서 잠긴 옛길의 흔적이 드러나 있다. 골짜기를 따라 닦였던 옛길은 저수지 뚝을 경계로 위아래 남아 있어서 길을 닦는 원리를 짐작할 수 있다.
구룡저수지 뚝방을 따라가 움푹 드러난 광산과 소태재 방향의 풍경을 담고, 돌아서서 아래 골짜기로 펼쳐진 전경을 담았다. 과자 부스러기 몇 개를 집어먹곤 경사진 뚝방을 걸어 내려갔다.
인근 축사에서 나오는 쇠똥 등을 모아서 퇴비를 만드는 곳이다. 작년에 걸을 때는 구린내가 진동했고, 비온 뒤여서 거름더미에서 흐르는 거무튀튀한 물이 길바닥에 흥건했었다. 어제는 바짝 말라가는 가을이고, 1년 넘게 푹 썩어서 그런지 냄새도 물기도 없었다. 작년에 걸을 때 길 건너 산 밑에 자리잡은 빨간 지붕을 얹은 외딴집이 인상적이었는데, 양쪽에 선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서 더욱 선명하게 일행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옛길 끝에는 들어갈 때 시내버스가 회차했던 송전마을 삼거리가 나온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다리 하나를 건너고, 개울가에 있는 집을 돌아가면 농로가 나온다. 개울을 따라 계속 걷는 길인데, 일단 차 걱정을 하지 않아서 좋다. 작년에 못 보았던 미나리 한 무더기가 개울에 자리를 잡았는데, 뜯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지나쳤다.
그 길에는 예쁜 움벙이 하나 있다.
돌로 벽을 쌓아 올려 동그랗게 마감한 움벙이었는데, 구룡저수지에서 공급하는 수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이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더구나 씩씩하게 자란 뽕나무 한 그루가 뚜껑처럼 움벙을 덮고 있어서 예쁜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움벙과 뽕나무,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던 1970년대에 활동했던 동희 선생님의 설명이 신명났다. 계속 또랑을 따라 걷다가 키 작은 수수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쭉쭉 뻗은 풍경을 만났다. "요새 수수 보기도 힘들어"라며 유병태 선생님이 한마디 거든다. 1미터가 채 되지 않는 작은 키에 붉게 익은 수수가 가득한 수수밭! 수수했다.
또랑이 끝나고, 다리 하나를 건너며 다시 또랑길로 걷는다.
작년에 걸을 때 길을 잘못 들었던 걸 까먹고는 어제도 길을 잘못 들었다. 비닐하우스 밭에 가서야 "또 잘못 들었구나!" 깨달았다. 나무가 심긴 비닐하우스인데, 무슨 나무인지 궁금했던 곳이다. 마침 밭에 주인이 나와 있어서, 길을 잘못 들었는데, 비닐하우스를 지나도 되냐고 묻고는 허락받고 제길로 나왔다. 물어봤다. 서양 자두를 심었는데 잘 안돼서 다른 나무로 갱신하는 중이란다. 새로 심은 나무는 체리란다.
비닐하우스를 가로질러 제길로 들어서니, 거기부터는 꽃길이다.
"꽃길만 걷게 해줄게"라며 호언장담했었는데, 들어가는 길에 회차하는 시내버스에서 야동부터 논 샛길로 노랗게, 붉게 핀 국화를 보았었기 때문이다. 노란 국화가 눈에 드는가 싶더니 훅하고 향긋한 국화 내음이 코를 습격한다. 붕 뜨는 기분이었다. 오상고절(傲霜孤節)이란 별칭을 가진 국화의 꽃길은 1~2주는 더 거뜬하게 버티며 가을을 보낼 것 같았다. 국화로 이어진 길, 가을걷이를 하기 전에 노랗게 익은 논길을 걸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를 생각하며 걸었다.
중간에 자리한 야촌 마을회관 앞의 너른 바위에서 잠시 쉬었다.
동네 사람이 하는 말이, 작년에는 국화 축제를 열었었는데, 올해는 열지 않았다고 한다. 6월 1일에 소태 하청리 산수유길에 들러서 잘 익은 산수유를 배터지게 따먹었던 새콤달콤함이 어제는 야촌 마을의 향긋한 국화 향기로 들어왔다. 야촌 마을회관에서 동막으로 난 길과 만나는 곳까지 걷고, 거기서 멈추기로 했다. 중간에 개울 건너에도 국화를 심어 놓아서 개울 양쪽이 모두 국화길이었다. 개울 건너 국화길을 걷는 동희 선생님의 붉은 등산복이 가을 나그네 같아서 한 컷 찍기도 했다.
마을버스를 타기로 하고, 길가 농막에 앉아서 쉬었다. 1시가 조금 넘었다.
세 시간을 걸어 넘어온 소태재를 바라보며, 마을버스 오기를 기다리다가 야동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거기서 덕은리에서 돌아나오는 356번 시내버스를 기다렸는데, 잘못 봤다. (구룡 경유) 표시가 있는 경우에는 송전 마을까지 갔다가 나오는 버스가 아니었다. 대안을 찾아보니, 2시 5분에 동막에서 출발하는 341번 시내버스가 있다. 개울 건너 동막 서낭당까지 가야만 탈 수 있는 시내버스다. 1시 43분에 다시 걸어서 2시에 동막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마침 서리 맞은 가지밭이 있어서 버려진 가지 열댓 개를 땄다. 미나리도 달롱도 거저 두고 왔는데, 덤으로 가지를 얻었다. 물론 내가 먹은 가지는 하나도 없지만.
익어가는 계절, 물들어가는 나뭇잎과 국화 향기가 가득한 산촌을 꼬마 악동들과 같이 걸었다. 충주 북쪽 끝에서 이어지는 꽃길을 걸었던 하루였다. 다리가 조금 아팠을 아이들이 걱정되지만, 성장통으로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위로한다.
20241110 牛步 김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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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