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 덕산면 성내리 노인회장 박홍원

내가 배운 기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기쁨이야

세상에는 하나의 직업을 천직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생계를 유지하며 인생의 쓴맛 단맛을 모두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 봉화재사람들 에서 박홍원 노인회장을 알게 되었다.


박홍원(76) 성내리 노인회장은 목수, 광산 노동자, 시멘트 공장, PC 미장 등 여러 직종을 거치며 갈고 닦은 기술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가 경험한 다양한 직업들이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얻은 기술을 마을과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후촌 여호와의 증인 건물자리가 태어난 곳이다.

박 회장은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가난했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때는 고기 한 점 올려놓고 도끼로 두들겨 먹는 날이 있었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힘들게 자랐지만, 그 당시의 어려움이 현재의 그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형석제련공장에서 일할 때 도랑에 찌꺼기가 가득 차 있는 기억을 떠올린다.


"뼈마디가 시큰거릴 정도로 공장에서 나온 찌꺼기들이 도랑을 메웠지. 그런 환경에서 자랐지만, 일하면서 내 몸을 단련하고 기술을 배우게 되었어."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묵묵히 일했다.

리비아에서 일하던 경험은 그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가족을 위해 해외로 나가 일을 하면서 그는 1년 반 동안 PC 미장 작업을 했고, 그곳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가족을 돌볼 수 있었다.


"리비아에서 일하며 집도 사고, 아이들도 잘 키울 수 있었지. 그때가 아니었으면 지금 내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는 리비아에서의 어려운 노동 환경 속에서도 가족을 위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박 회장은 광산에서 일을 시작으로 여러 직종을 섭렵했다.


목수, 시멘트 공장 일 등을 거치며 다양한 기술을 습득했다.


그는 "일거리가 많지 않았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고 했어. 그게 내 생활이었고,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었지"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직업을 경험하면서도, 기술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했다.

그는 다양한 직업에서 쌓은 기술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일을 시작했다.


"내가 배운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었지."


그는 경로당에서 급식 봉사를 하며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왔고, 이러한 활동으로 여러 차례 수상을 받았다.


"내가 배운 기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기쁨이야."


박 회장은 지역 사회에서의 봉사 활동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나눔이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홍원 회장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면서 겪은 모든 일들이 오늘날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자부한다.


그는 젊은 세대에게 "기술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을 전하며, 앞으로도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할 계획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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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