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은 늘 화려하게 오지 않는다.
어느 날 길을 걷다 문득 담장을 바라보면, 그곳에 조용히 계절이 걸려 있을 때가 있다.
하얀 담장 위로 가늘게 뻗은 덩굴 하나. 그 끝에는 이미 말라버린 작은 잎이 매달려 있다.
겨울의 시간을 견디며 남아 있는 마지막 흔적이다.
사람들은 봄을 꽃으로 기억한다.
벚꽃이 피고, 산수유가 노랗게 번질 때 비로소 봄이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의 눈에는 그보다 조금 더 이른 순간이 보인다.
꽃이 피기 전, 아직은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 사이의 시간이다.
이 담장의 덩굴은 바로 그 시간을 말해준다.
잎은 이미 말라 바람에 흔들리고 있지만 가지는 여전히 벽을 붙잡고 있다.
그리고 그 가지는 머지않아 다시 작은 잎을 틔울 것이다.
겨울과 봄이 같은 자리에 머무는 순간이다.
사진은 거창한 풍경을 찾기보다 이런 작은 장면을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담장, 말라버린 잎 하나, 가느다란 덩굴 줄기. 그 속에서 계절의 숨결을 발견하는 순간 사진은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
오늘도 나는 그렇게 담장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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