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충주 千里忠州 11월 나들이 단양에서 제천으로, 충주 옛길 탐방
어제 아침에 걸려온 전화 한통에는 모녀현 넘기에 여섯명의 아이들이 함께한다는 소식이 건너왔다. 11월 2일 충주역에서 8시30분에 만나 기차를 탔다. 끝까지 충주목 또는 충주군 덕산면으로 남아있던 제천시 덕산면, 그리고 예천 방면으로 벌재를 넘고 다시 벌천리를 통해 덕산면 도기리를 잇던 모녀현(毛女峴) 첫고개를 넘기로 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忠原縣) 산천조에는 “모녀현(毛女峴)은 충원현의 동쪽 80리에 있다. 대미산(帶美山)에서 나온다. 전해오는 말에 신녀(神女)가 음식을 먹지 않고 옷을 입지도 않았으며, 전신에 털이 나서 매우 길었는데, 산등성이를 넘고서 산을 넘는다고 한다[毛女峴在東八十里 帶美山來 諺傳神女不食不衣 滿身生毛甚超崗越巒云].”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모녀현은 온몸에 털이 난 신녀에서 유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모녀현은 모녀치(毛女峙), 모녀티, ‘모녀재’로도 불린다. 네이버지식백과에 나온 말이다.
지금 시대에 힘들여서 옛길을 걷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지형지물과 주요통로에 대한 이해를 위한 경험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녀현은 조선시대에 쓰인 역대 지지류에 충주 동쪽의 첫 고개로 계속 기록되었고, 충주 덕산면을 이해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다. 충주에 살고 있는 사람이 모녀현을 넘은 게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모른다. 모녀현을 넘으면서 대충 50년은 지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계획은 이랬다.
08:35에 충주역에서 제천행 무궁화호 열차로 09:06에 도착하여 제천의 영인이형 잠깐 만나보고, 09:50에 제천역 앞에서 160번 시내버스로 단양 다누리센터에 도착한다. 10:50부터 단양 구경시장 구경하면서 간단한 점심 요기 후 12:05에 다누리센터 앞에서 411번 시내버스를 타고 벌천리에 도착한다.
13:00 부터 모녀현 넘기(3시간 예상), 16:00 덕산면 도기리에서 971번 시내버스로 덕산 성내리 도착해서 970번 시내버스로 환승해서 제천역 도착한 후 19:11에 제천에서 충주행 무궁화호로 귀환(19:44)한다.
단양 다누리센터 앞 고수대교를 뒤로 하고
단양에 도착해 들어간 구경시장(九景市場)은 복작복작 장구경을 온 사람들로 들끓었다. 단양 장날이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 녹색쉼표! 단양”이라는 구호 아래 지난 20년간 다져온 변모한 단양의 모습이었다.
치킨, 마늘빵, 떡갈비 등으로 대표되는 마늘을 응용한 음식점이 줄지어 있는 그곳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집도 벌써 여러 있었다.
제천에서 영인이 형이 전화해 놓은 중부내륙문화관광협동조합 회원사인 단양 흑마늘빵집과 너마늘치킨집을 순례하며 치킨과 마늘빵을 기부 받아 아이들과 배를 채웠다. 1시간의 기다림을 채운 후에 다누리센터 앞에 도착하니 벌천행 12시 5분 411번 시내버스가 막 도착했다. 얼마나 걸리냐는 질문에, 장담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노선 시간표에는 종점에서 1시 15분에 돌아와야 하는데, 주말이라 시간을 장담할 수 없다. 지난주에는 점심도 못 먹고 운행했다는 시내버스 기사님의 가슴아픈 단풍철 무용담도 곁들였다.
단양댐 건설 예정 발표가 난 곳이 선암계곡이다. 구단양을 지나 우화교를 건너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소선암을 시작으로 하·중·상선암이 벌재까지 이어지는 계곡을 따라 연속된다.
단양댐은 단양팔경의 3경인 상중하선암을 수장시키는 계획이다. 벌천리로 우회전해 들어간 시내버스는 옛마을 앞에서 좌회전을 했다. 첫 번째 오류가 시작됐다.
단양 사람들은 ‘모여티’로 부르는 모녀현의 단양 벌천리 모여티 마을을 다니는 버스는 따로 있단다. 급히 내려서 벌천리 골짜기를 완주하게 됐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모여티 마을행 시내버스는 413번으로 14시에 다누리센터 앞에서 출발한다. 만약 그것을 탔다면 모녀현을 넘어서 연결되는 시내버스를 타고 충주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류가 빚은 오류 덕분에 충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계획에 없던 2.7km 걷기를 시작했다. 오후 1시다. 나도 처음 걷는 길인데 일행으로 아이들이 여섯이다. 멀리 앞에 보이는 산맥의 흐름에서 가장 낮은 고개가 '모녀현'이려니 생각하고 벌써 지친 시늉을 하는 아이들을 재촉했다. 모여티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1시 30분. 거기에서 잠깐 쉬며 앞길을 가늠해 보았다.
모녀현 꼭대기에 3시까지 도착해서 한 시간을 내려가 덕산면 도기리에 4시까지 도착하는 것을 맘속에 그렸다. 쉼을 끝내고 정류장 길 건너 집에 무작정 들러서 아이들의 화장실 볼일을 해결한 후 본격적으로 모녀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거기부터 모녀현까지는 무조건 오르막길이다. 아이들을 배웅하는 할머니가 ‘길이 험할텐데. 요새는 거기 넘는 사람이 없는데!’ 하시며 걱정이 한 말[斗]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잘 걸었다. 나는 처음에 앞서 걷다가 뒤쳐지는 아이의 맨 뒤에 섰다. 한 구비, 두 구비, 지그재그로 닦인 임도는 완만한 경사였다. 예상처럼 가을에 독이 오른 뱀의 출몰은 걱정 안해도 됐다.
드디어 모녀현 정상에 섰다. 예상했던 3시였다. 작은 물웅덩이가 있었고 부근은 습했다. 모양을 보아하니 멧돼지 목욕탕 같았다.
오르막 산길을 힘겨워하던 녀석들이 모녀현을 넘자마자 한 녀석만 남겨둔 채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내리막을 내리 걷는 녀석들이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앞서 가며 재잘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 걸으며 사라진 녀석들에게 ‘거기서 잠깐 쉬기!’를 소리치고 가 보니, 햇살이 잘 드는 평평한 곳이었다.
3시 20분이다. 내려가며 나무 사이로 흘깃흘깃 보이는 마을이 있었고, 작년에 왔던 도기리임을 짐작했다. 15분을 쉬면서 간식을 먹으며 기력 보충을 했다.
다시 출발. 조금 내려가니 지난 여름에 쓰러진 소나무가 길을 막았다. 길에 가로걸린 소나무는 틈이 넉넉했다. 거기를 지나니 또 쓰러진 나무가 완전히 길을 막고 있었다. ‘선생님, 길이 없어요!’라며 걱정인지 푸념인지 녀석들이 잠시 당황한 기색이다.
옆으로 사람이 다닌 흔적이 보인다. 그곳을 따라 잠시 내려가니 아스팔트 포장길이 나왔다. 작년에 덕산 도기리에서 승용차를 타고 도착했던 곳이다. ‘이젠 됐다!’ 하고는, 아스팔트 포장이 끝나는 삼거리까지 무조건 걷기를 선언하고 내리 걸었다.
내리막을 앞서 걷던 녀석들이 평지가 나타나니까 또 꾀를 부린다. 시간은 3시 45분을 지나가고, 예정된 시내버스 시간은 4시였다. 조바심이 났지만 재촉할 수도 없으니 살살 구슬리며 도기리의 모녀재 표지석까지 걸었다. 거기서 '인증샷!'을 외치니 포즈는 백만불로 꾀부리는 것도, 찡찡거림도 사라졌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3시 58분이다. 5분, 10분이 지났는데 버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근처에 들깨를 털고 정리하는 노부부가 있어서 시내버스 시간을 여쭤보니, '아직 안 갔어. 곧 올 거야. 아니면 다섯 시에 또 있어.'라기에 안심하고 기다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녀석들은 다시 그들만의 놀이로 시간을 채우고 있다. 벌천리 모여티 마을에서 모녀현을 넘어서 벌천리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약 6km이다.
971번 시내버스가 성내리에서 올라와 앞을 지나갔다. 양주동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탔다.
두 번째 오류였다.
970번 버스를 타고 제천역에 갈 예정이라고 했더니, 970번 버스는 5시 반에 있단다. 7시 11분 기차를 타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하세월이 될 예감이 들었다.
제천 성내리에 내려서 직행버스 매표소를 겸하는 마트에 들렀다. 충주행 직행버스가 5시 10분에 있단다. 아이들의 의견을 물었다. ① 5시 30분에 있는 제천행 시내버스를 타고, 잠깐 기다리며 떡볶이를 먹고 기차를 탄다. ② 7시 넘어서 있는 충주 시내버스를 탄다. ③ 5시 10분에 있는 충주행 직행버스를 탄다.
결론은 ③번. 바로 탄다.
버스표를 끊는다. '어른 하나에 초딩 여섯이요' 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한참 우왕좌왕한다. 초딩이랬더니 요금을 찍지 않은 빈 버스표가 안 보여서 그렇단다. 초등학생이 직행버스를 타는 일이 거의 없고, 또한 스탬프도 초등학생은 없단다. 빈 표를 찾아서 쓴 것을 보니 '충주 초딩'이라고 했다. 15분 정도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우등버스다. 한 40분 걸린단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은 녀석들은 곧장 곯아 떨어졌다. 나도 곯아 떨어졌다. 충주에 도착하니 5시 55분이다.
8시부터 움직인 모녀현 넘기는 두 번의 시간 오류를 경험하며 저녁 6시에 무사히 돌아왔다.
<모녀현 넘기 최종 시간표 : 대중교통을 이용>
08:35(충주역) → 09:05(제천역) → 09:50(제천역, 160번 시내버스) → 10:55(단양 다누리센터) → 12:05(단양다누리센터, 411번 시내버스) →12:55(벌천) → 모여티 마을까지 걷고(2.7km), 다시 모녀현을 넘어서 덕산면 도기리까지(약 6km) → 16:25(도기리, 971번 시내버스) → 덕산면 성내리, 17:10(충주행 직행버스) → 17:55(충주공용버스터미널 도착)
(20241103 牛步생각) 이 글에 대한 권리는 김희찬 작가에 있습니다. 본 기사는 우보가 본 기자가 제천 역전시장에서 사준 우동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5만원의 경비를 받아 갔으므로 기사로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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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