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이 전하는 조용한 울림 -
<민중을 이끄는 자유> 1830, 외젠 들라크루아, 루브르 박물관
밤 10시 52분,
고요함이 짙게 드리워진 공간에 정적을 깨는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어.”
늦은 시각에 들은 뜬금없는 말에 나는 심드렁하게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우리나라.”
TV 화면 속에는 무장한 군인들과 시민들이 국회 앞에서 충돌하는 모습이 보였다. 장갑차와 바리케이드, 분노로 울부짖는 시민들이 화면을 채웠다. 무장한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창문을 통해 진입하는 모습도 보였다. 화면 속의 혼란은 과거의 기억을 소환했다.
1979년 12월, 내가 청소년이었던 시절, 그때 경험했던 비상계엄의 기억은, 충격에 휩싸인 교실에서 일어났던 혼란으로 시작되었다. 비상계엄 상황에서의 제약과 불편은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후 1980년의 혼란과 1987년의 비상계엄을 겪었다. 또다시 들려온 비상계엄이란 단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잊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기억을 지금 이 순간, 낯설게 되살려 주었다.
늦은 시각에는 마시지 않던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나는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를 떠올렸다.
그림 속에서 민중은 바리케이드를 넘으며 자유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림 중앙의 여신 마리안은 프랑스의 삼색기를 들고 민중을 이끌고 있다. 그녀는 여리고 아름다움이 이상화된 여신이 아니다. 현실 속 고통과 저항을 품은 단단한 존재이다. 그녀의 굳은 팔뚝과 비장한 표정은 민중의 얼굴이자 목소리다.
당시, 샤를 10세의 왕정복고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들라크루아는 화폭에 생생히 표현한 것이다.
그림 속의 분노와 저항은 과연 1830년에, 과거에만 머무는 것일까?
이 그림은 말한다. 자유와 저항의 목소리는 언제나 유효하다고, 자유와 희망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지금도 우리는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나는 쇼팽의 피아노곡 <혁명>을 틀었다. 거침없이 질주하며 흐르는 왼손의 선율, 화답하는 오른손의 강렬한 화음과 선율이 저항과 희망의 에너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내게 들려오는 이 곡은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의지를 느끼게 해준다. 음악은 단순한 선율이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 그리고 희망이다.
자유는 단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직 자유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과 희생으로 지켜내는 것이다.
나는 코끝에 스미는 따뜻한 커피 향을 맡으며 생각했다. 물이 고요하고 잔잔할 때는 모든 형상을 쉽게 담을 수 있다. 그러나 격랑 속의 물은 그 어떤 것도 담아낼 수가 없다. 오늘날 우리는 격랑 속에서 자유와 희망의 의미를 다시금 묻고 있다.
들라크루아의 그림 속에서도, 쇼팽의 선율 속에서도, 그리고 우리 일상의 소소한 순간 속에서도 자유의 숨결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다.
칼럼위원 아르티움연구소 박영미 소장은 부모교육과 감정코칭전문가로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화를 쓰고 있다. 일상과 예술에 대한 인문학 강의도 한다.
주요 강의 주제 :
- 일상의 채색
- 일상의 소소한 연주
- 일상의 소소한 사유
- 소소함이 특별해지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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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