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미 칼럼] 작은 말의 울림, 별처럼 빛나다

겨울날, 고흐와 디킨슨이 주는 메시지

<별이 빛나는 밤> 1889, 빈센트 반 고흐, 뉴욕 근대미술관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싱크대 앞에 서서 컵을 씻으며 창밖에서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에 따라 흥얼거렸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울려오는 캐롤이었다. 얼마 동안 음악이 울렸을까. 이내 음악이 멈췄다.

몇 해 전부터, 11월 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산타 인형. 황금색의 색소폰을 들고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연주하는 모습과 함께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편의점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12월에는 늦은 밤과 새벽을 제외하고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에도 계속 들려왔던 캐롤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에 처음 들려왔고 이후 간헐적으로 들렸다.

편의점 사장님의 표정에는 엷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요. 음악을 트는 것도 조심스러워요. 마음이 뒤숭숭하고 앞이 캄캄하네요.”
“우리 국민은 늘 어려움을 이겨냈잖아요. 사장님께서도 잘 되실 거예요.”
내 말에 사장님은 차 한잔을 건네며 말했다. “손님 말씀 들으니 힘이 납니다. 따뜻한 차인데 드세요.” 이 짧은 대화가 사장님에게는 마치 차 한 모금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나 보다.
예사로이 나누는 말 한마디가 이렇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그리고 나 자신도 깨달았다. 우리가 서로에게 전할 수 있는 작은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를.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이 떠올랐다. 고흐는 정신병원의 캄캄한 현실 속에서도 별과 달이 빛나는 밤하늘을 그려냈다. 정신적, 경제적 고통 속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그는 살아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 인간 내면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하며 희망을 강렬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고흐의 붓끝에서 피어난 희망의 빛은 시공을 초월하여 지금까지도 우리의 삶에 깊은 울림과 공감을 자아낸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우리에게 ‘눈을 들어 밤하늘의 희망을 보라. 그리고 희망을 찾아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겨울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에밀리 디킨슨의 <만약 내가(If I can)> 시구가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만약 내가 한 생명의 아픔을 덜고,
한 괴로움을 달래주고,
기진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2024년 겨울, 우리의 현실이 차갑고 캄캄한 밤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별은 더욱 빛이 난다. 또 희망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따스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하고, 따스한 말 한마디로 마음을 어루만질 때, 희망은 더욱 빛이 나는 것이 아닐까!

고흐가 그의 그림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빛을 그릴 수 있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번 겨울 나 역시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따스함을 건네고자 한다. 우리의 작은 말들이 별처럼 빛나고, 우리 모두가 더 밝고 따뜻한 내일을 만들어 가길 바라며.



칼럼위원 아르티움연구소 박영미 소장은 부모교육과 감정코칭전문가로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화를 쓰고 있다. 일상과 예술에 대한 인문학 강의도 한다.

주요 강의 주제 :
- 일상의 채색
- 일상의 소소한 연주
- 일상의 소소한 사유
- 소소함이 특별해지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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