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와 산을 지운 운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한 채의 배

짙은 안개가 호수와 산을 모두 감싸고 있다.
평소라면 선명하게 보였을 산의 능선도, 넓게 펼쳐졌을 호수도 오늘은 안개 속에 모습을 감췄다.
그런데 희미한 물안개 사이로 작은 배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붉고 푸른 지붕의 작은 공간.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안개 속에서 유일하게 색을 가진 풍경이 되어 있다.
나는 이 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는 풍경보다, 오히려 감춰진 풍경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있다.
보이지 않는 산 너머에는 또 다른 산이 있을 것이고, 안개 아래에는 넓은 호수가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작은 배 한 채뿐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와 닮았는지 모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우리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잠시 안개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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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택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