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미 칼럼7] 사랑은 표현해야 한다, 지금 당장!

발렌타인 데이가 던지는 진짜 질문

페데리코 안드레오티, <정원에서의 다정한 순간 A Tender Moment in the Garden>, 연대 미상. 개인 소장

창문 흔들리는 소리가 꽤나 크게 들려왔다. 입춘에 매서운 꽃샘추위가 찾아온 것이다. 이 추위 속에서도 분홍색과 파란색 풍선, 리본으로 한껏 멋을 낸 화려한 거리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윽고 도착한 대형마트의 장식을 보고서야 발렌타인 데이를 위한 장식임을 알게 되었다. 초콜릿과 사탕들이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포장지에 싸여 마치 미인대회에 출전한 후보들처럼 매대 계단 위에 총총히 놓여 있었다. 마트 측의 마케팅 전략이 뻔히 보여 웃음이 나왔지만, 예쁘게 포장된 상품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빠랑 오빠한테 선물 줘야지!” 사탕과 초콜릿의 성분표를 보며 신중하게 고르는 딸. 한편, ‘저렇게 포장하는 방법도 있구나.’ 포장지의 재료와 색깔, 포장법에 관심을 기울이는 나. 발렌타인 데이에 의미를 부여하는 딸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나.

발렌타인 데이는 사랑을 표현하는 날이다. 3세기경 로마의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군사력 유지를 위해 금혼령을 내렸다. 결혼을 하지 못해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수많은 연인들을 위해서 발렌티노 주교가 몰래 혼배성사를 주관했다가 처형을 당했다. 그가 순교한 2월 14일이 오늘날의 발렌타인 데이로 이어진 것이다.

초콜릿과 사랑을 처음 연결한 것은 마야인들이었다. 기원전 500년경, 마야인들이 코코아콩으로 만든 음료를 만들어서 신랑과 신부가 코코아를 한 모금씩 마시며 사랑을 약속하는 마야 결혼 의식에서 초콜릿이 사랑의 상징이 된 것이다. 이후, 19세기 영국에서 최초의 하트 모양 초콜릿 상자가 등장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마케팅으로 발렌타인 데이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다. 사랑처럼 달콤하고 감미로운 단어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렇다고 사랑에는 달콤함과 감미로움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사랑을 느끼는 것만큼 중요하다.

화가 페데리코 안드레오티가 그린 <정원에서의 다정한 순간>을 보며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림 속 남녀가 벽을 사이에 두고 손가락 끝을 살짝 잡고 있다. 남자는 높은 담벼락을 타고 올라 두 손으로 벽을 잡고 몸을 지탱하느라 여자의 손을 덥석 잡지 못한 듯하다. 벽을 잡고 지탱하는 남자의 왼손을 여자가 살짝 잡아준다. 두 사람을 가로지르는 벽, 벽 너머의 손길, 분홍색 장미 두 송이와 붉은 책 한 권. 두 남녀가 사랑을 이루려면 벽을 넘어야 한다. 그 벽은 물리적 거리일 수도, 시간일 수도, 마음의 거리일 수도 있다. 열정적인 사랑으로 저 높은 벽을 넘어 반드시 사랑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는 그림 같다. 이 그림에서는 사랑이란, 감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노력하고, 표현하고, 지켜내야 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이러한 사랑은 비단 연인 사이에서만 적용되는 것일까?

2월 14일은 또 다른 사랑의 날이기도 하다. 1910년 2월 14일, 안중근 의사가 조국의 독립을 외치다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다. 발렌티노 주교가 젊은이들의 사랑을 지켜주었듯이, 안중근 의사는 조국을 향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아리아 <나를 울게 하소서>가 떠오른다.

“나를 울게 하소서 내 잔혹한 운명에, 그리고 한탄으로 자유를 그리네.슬픔아 부수어라 내 고통의 이 속박을 오직 비탄을 통해서”

납치된 알미레나가 절절이 토로하는 선율과 가사, 그 슬픔과 고통이 개인적인 고통을 넘어 우리 사회에 생생하게 전달되는 듯하다.

발렌티노 주교가 지켜낸 사랑, 그림 속 남녀의 사랑, 안중근 의사의 나라 사랑, 대장군 리날도와 알미레나의 사랑. 우리는 과연 사랑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랑이 절실한 지금의 우리 사회,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은 무엇인가?


칼럼위원 아르티움연구소 박영미 소장은 부모교육과 감정코칭 전문가로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화를 쓰고 있다. 일상과 예술에 대한 인문학 강의도 한다.

주요 강의 주제 :
- 일상의 채색
- 일상의 소소한 연주
- 일상의 소소한 사유
- 소소함이 특별해지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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