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미 칼럼8] 아이들의 웃음, 그리고 지켜지지 못한 생명

세 번의 기회를 놓친 후, 우리가 해야 할 일

페테르 한센, <노는 아이들. 영하베 광장 Legende børn. Enghave Plads>, 1907-1908.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아직은 봄이 멀게 느껴지는 날씨지만, 오랜만에 꽤 따스한 햇볕이 반가웠다.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길 아래쪽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고함과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잠시 멈춰 서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친구를 잡으려고 뛰어다니는 아이, 잡히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아이, 빙 둘러서서 노는 여러 무리의 아이들. 햇살 아래 반짝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마치 봄이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가슴 한편이 무거워졌다.

얼마 전, 어리디어린 생명이 꽃을 피워보지 못한 채, 무참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지켜지지 못한 또 다른 아이, 그 아이가 떠올랐다.
그 아이도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깔깔대며 뛰어놀았을까?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학교 정문 앞에는 꽤 많은 인원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문을 나오는 아이와 함께 귀가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부모님들이 방과 후에 아이들을 데리러 이렇게 많이 나오세요?” 조심스럽게 묻자, “이번 사건 때문에요. 걱정돼서 많이 오세요.”라고 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집에 도착할 때까지 더더욱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어린 여자아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페테르 한센의 그림, <노는 아이들. 영하베 광장>이 떠올랐다.
그림 속의 아이들은 양손을 잡고 길게 늘어서서 햇살을 받으며 놀고 있다. 햇빛에 눈 부신 듯 찡그리면서도 신이 난 얼굴이다. 친구의 손을 잡고 한 줄로 선 아이들은 상대 친구들을 잡으려고 앞으로 돌진하는 모습이다. 그 돌격팀 마지막 아이의 표정과 손동작, 또 그들의 연대를 깨고 탈출하려는 상대 팀의 몸짓과 눈동자에서 긴장감과 함께 역동적인 모습이 귀엽게 느껴진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놀았던 어린 시절의 놀이가 떠오르면서.

페테르 한센은 밝고 따뜻한 색으로, 어린이들이 노는 운동장의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강조하였다. 햇살이 가득한 하늘 아래, 어린이들의 얼굴과 옷의 밝은 색채는 생동감을 더하고 감상자에게 기분 좋은 느낌을 전달해 준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보면서 또 다른 생각에 가슴 한편이 아릿해졌다.
그림 속의 아이들은 자유롭게 뛰어놀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곧 봄이 오면 햇살이 비추는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깔깔대며 신나게 놀 수 있었을 아이.
하지만 그 아이는 더 이상 친구들과 뛰어놀지 못하게 되었다. 어린 생명의 짧은 삶이 안타깝다.

가해자와 마주한 그 극한 공포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우리 사회는 그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
“이 비극을 막을 기회가 최소 세 번은 있었다.” 사고 발생 후 많은 사람들과 언론에서 한탄하며 던진 말이다. 우리는 그 세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아이가 위험에 처해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웃음이 지켜지는 사회.
그림 속 아이들처럼,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현실의 아이들처럼, 모든 아이가 안전하고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햇살이 가득한 어느 이른 봄날, 더는 아이들의 웃음이 멈추지 않기를.



칼럼위원 아르티움연구소 박영미 소장은 부모교육과 감정코칭 전문가로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화를 쓰고 있다. 일상과 예술에 대한 인문학 강의도 한다.

주요 강의 주제 :
- 일상의 채색
- 일상의 소소한 연주
- 일상의 소소한 사유
- 소소함이 특별해지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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