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힘 -
에드가 드가, <스타 The Star>, 1878. 오르세 미술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현의 떨림. 깊고도 그윽한 첼로의 선율이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진다. 희미한 빛이 수면 위로 길게 드리워지고, 그 속에 한 마리의 백조가 유영하고 있다. 오직 발끝(부레 스텝 pas de bourrée)으로 미끄러지듯이 호수를 가르며 춤추는 발레리나.
에드가 드가의 그림 <스타(The Star)>가 떠오른다. 드가는 발레리나를 수없이 그렸다. 손끝과 발끝, 표정에서 전해지는 몰입감. 무대 위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기울이는 몸. 한순간도 멈출 수 없는 균형의 세계. 그 속에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선 치열한 노력이 있다.
그렇다면, 발레 <빈사의 백조(The Dying Swan)>는 어떨까?
파란 호수 위, 백조는 우아한 날갯짓으로 수면을 가른다. 마치 꿈결처럼 아련하다. 양팔을 넓게 벌려 느리게 날갯짓하는 아름다운 백조는 쉼 없는 발끝의 잰걸음으로 호수 가운데 이른다.
날개를 활짝 펼쳐서 더욱 아름답게 춤추던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백조의 몸이 한순간 흔들린다. 날개가 중심을 잃고 고개가 점점 아래로 떨어진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허리는 휘어지고 날개가 꺾인다. 처연한 모습이다.
그러나 백조는 포기하지 않는다.
두 날개를 높이 치켜들고 마지막까지 생(生)을 놓지 않으려 한다.
휘청거리는 몸짓.
숨 가쁜 날갯짓.
하지만 허공으로 향했던 두 날개가 이내 축 처지고, 백조는 무너진다.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지만, 발끝은 점점 더 무뎌진다. 날아오르려는 마지막 시도마저 부서지고, 남은 건 떨리는 손끝과 흐느적거리는 날개뿐. 그럼에도 백조는 끝까지 움직인다. 그 자체로 하나의 시(詩)처럼 깊은 울림을 남긴다.
마지막까지 흔들리는 손끝, 떨리는 발끝.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그러나 서서히 날개는 내려앉는다. 고개가 기울고, 두 눈이 감긴다.
그리고 마침내, 백조의 마지막 숨결과 함께 생상스의 <백조> 선율도 고요히 사라진다.
무대에는 다시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질문을 남기는 듯하다.
‘죽음인가, 아니면 또 다른 시작인가?’
<빈사의 백조>를 표현하는 발레리나, 그녀의 몸짓은 단순한 춤이 아니었다. 얼굴과 팔, 손끝과 발끝, 온몸으로 그려내는 삶과 죽음의 경계였다.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마지막 날갯짓 속에는 절망만이 아닌 희망이, 삶을 향한 몸부림이, 존재의 마지막 흔적이 담겨 있었다.
호수 위에서 죽어가는 백조. 그러나 그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 마지막 몸짓 속에서 우리는 본다.
삶은 때때로 우리를 흔들고 넘어뜨리지만, 우리는 여전히 나아가려 한다.
끝까지 버티고, 마지막 순간까지 날갯짓한다.
그리고 바로 그 마지막 몸짓 속에서,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칼럼위원 아르티움연구소 박영미 소장은 예술칼럼니스트이고, 동화작가이며, 일상과 예술에 대한 인문학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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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