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미 칼럼] 엉킴과 풀림 속에서 발견하는 희망

- 실타래로 엮어가는 삶의 이야기 -

프레더릭 레이턴, <실타래 감기 Winding the Skein>, 1878.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20년 넘게 입은 니트 카디건이 있다. 파스텔 톤의 다홍과 주황의 중간 톤이다. 검은색 상.하의를 입고 그 위에 카디건을 입은 뒤 검은색 허리띠로 코디하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면서 “차분하고 세련되어 보인다”라는 칭찬을 듣곤 했다. 늘 손이 갔던 이 카디건은 여름을 제외한 세 계절 내내, 입을 때마다 나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그런데 이 카디건의 허리 부분에서 100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을 발견했다. 오래된 물건의 자연스러운 퇴장이었지만, 궁리 끝에 실을 풀어 모자와 머플러를 짤 계획으로 카디건의 실을 풀었다. 방바닥에 카디건을 펼쳐놓고 실을 풀기 시작했지만, 실은 이내 엉켜 버렸다. 얽히고설킨 실을 푸느라 애를 먹는 중에 딸의 도움으로 실을 다 감을 수 있었다. 두 주먹만 한 크기의 실타래가 여러 개 되었다. 딸과 마주 앉아 함께 실타래를 감으면서 어린 시절 친정엄마와 실을 감던 추억이 떠올랐다. 양손에 실을 걸어 실타래를 만들었던 그 순간들.


아마도 프레더릭 레이턴의 그림 <실타래 감기>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림에서, 양손에 실을 건 엄마는 실이 잘 풀리도록 손을 이리저리 돌려주고 있는 듯하다. 실을 감는 딸은 적당한 간격과 적당한 힘으로 실을 당기고, 모녀는 담담한 눈빛과 차분한 동작으로 정성스럽게 실을 감고 있다.


이 적당함에 문제가 생기면 실은 끊어지거나 엉켜서 낭패를 보게 된다. 실은 끊어지면 다시 붙일 수 없고, 엉키기 시작하면 엉킨 부분이 걷잡을 수 없이 많아져서 실을 끊어내야 한다. 결국 엉킨 실은 포기해야 한다. 이 그림은 서로를 도와 실을 풀고 감아 실타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의 상호 의존성과 협력의 중요성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모녀가 서로를 도우며 실을 풀어가는 조화로운 동작은 마치 삶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우리의 노력과 닮았다.

그림의 후경에는 나무, 강, 산, 하늘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일에 집중하는 모녀의 담담한 모습과 어우러진 자연은 초연하면서도 다정해 보인다. 엄마의 손에 실이 몇 가닥 남지 않았다. 딸의 발 근처에 몇 개의 실타래가 있다. 그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실타래는 무엇이 될까? 실타래는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성취와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의 은유처럼 보였다.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의 음악 <백조>를 들으며 2025년을 살아갈 우리를 생각해 본다. 잔잔한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우아하고 아름답게 헤엄치는 백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선율. 반면, 끊임없이 들려오는 아르페지오 반주는 물 밑에서 쉴 새 없이 발을 움직이며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백조의 모습이다. 이는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겉으로는 차분하고 조화롭게 보이려고 애쓰지만, 그 이면에서는 수많은 갈등과 노력을 끌어안고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삶.

올 한해 우리는 몇 개의 실타래를 풀고 감아야 할까? 엉킨 실타래는 우리의 고민과 도전일지도 모른다. 관계를 맺고, 풀고, 엮어가는 과정에서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실이 엉키고, 다시 푸는 반복 속에서 좌절도 느끼겠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한 올 한 올 실타래를 만들어 가는 자세. 그렇게 완성된 실타래는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나며, 우리에게 자부심과 만족감을 줄 것이다.

삶의 실타래를 감고 엮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성취와 자신감은 삶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2025년 1월의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우리 안의 따뜻한 열정과 희망을 한 올 한 올 엮어가자. 그림 속 모녀처럼 담담한 모습으로.



칼럼위원 아르티움연구소 박영미 소장은 부모교육과 감정코칭 전문가로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화를 쓰고 있다. 일상과 예술에 대한 인문학 강의도 한다.
주요 강의 주제 :
- 일상의 채색
- 일상의 소소한 연주
- 일상의 소소한 사유
- 소소함이 특별해지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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