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미 칼럼] 거울 속에서 찾는 새해의 나

- 거울 속의 나, 허영과 진실 -

<허영(Vanity)> 오귀스트 툴무슈, 1890, 파리 장식미술박물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

  “너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니 조용한 연말이 좋겠지만, 난 올해 연말이 너무 우울해. 시끌벅적해야 연말 기분이 나는데, 이번엔 모임이 하나도 없어.” 휴대폰을 통해서 전해온 친구의 연말 근황이었다. 왠지 모를 갑갑함에 집 주변을 산책하며 3일 남은 올해를 생각했다.

2024년이 떠날 채비를 하는 거리 풍경은 공허했다. 앙상한 가로수만이 마지막 남은 잎으로 붉고 노란 색채를 펼쳐 놓고 있었다. 빙하 같은 파란 하늘과 겨울 햇빛 아래에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차디차게 목덜미에 와서 닿는 드센 바람결이 나무들 틈바구니의 샛노랗고 새빨간 단풍잎들을 눈보라처럼 흩날려 내리게 했다. 그 바람의 틈새로 들려오는 겨울새의 울음은 자연이 보내는 작별 인사처럼 경이로움과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내년을 기약하는 자연의 마지막 몸짓과 마주하며 그 장관에 녹아들었다. 그 순간, 박경리 소설 『토지』의 글이 떠올랐다. “본성을 감출 필요도, 간파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 허위가 없는 자연.” 나는 생각했다. 자연은 스스로의 변화를 통해 아름다움과 영원함을 남기지만,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붙잡으려 하기 때문에 유한한 것인가.

연말이 되면 지나온 한 해 동안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돌아본다는 것은 지나온 시간 속의 나를 관조하고 성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목적을 사유하면서 새해에 나아갈 새로운 목적지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프랑스 화가 오귀스트 툴무슈의 그림 <허영(Vanity)>을 떠 올렸다. 여인은 파티에 가기 전, 거울 앞에서 많은 사람에게 칭송받을 자신의 완벽한 자태에 도취되어 키스를 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게 키스를 하는 것인지,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에 하는 것인지......
거울은 성찰, 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허영심, 자기애를 비추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자기실현, 자기의식의 은유와 환유이기도 하다.

‘명예와 거울은 입김만으로도 흐려진다’라는 말이 있다. 스페인 사람들이 명예의 성질을 거울에 비견해서 한 말이다. 우리가 붙들려고 하는 명예와 부, 권세는 거울처럼 쉽게 얼룩질 수 있는 덧없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거울은 우리에게 늘 깨어서 내면의 진실과 끊임없이 마주하며 성찰하라고 말한다.

10여 년 만에 다시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에서 받은 감동이 떠올랐다. 그는 인간이 추구하는 안락함, 즉, 내 몸이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 최고라는 사고를 넘어서라고 통렬히 말해왔다.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카의 형제들』에서 말했다.
“사람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불행해지는 것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의 수를 세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있는 행복의 수는 세지 않는다.”
우리는 삶 속에서 행복을 잊고 지나치거나 흘려버린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산책을 마친 뒤 따뜻한 차를 마시며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을 들었다. 추운 겨울 난롯가의 따뜻함에서 느끼는 만족감을 표현한 이 곡은 인간의 삶과 자연의 조화를 그려냈다. 산책길에서 자연이 보여주었던 장관과 문학이 준 통찰, 음악의 여운은 2024년에도 나의 일상에 소소한 행복을 안겨준 선물들이었다.

곧 2025년 새해다. 한 해의 끝과 또 다른 시작을 동시에 품고 있는 올해의 끝자락에서 나는 생각한다. 성찰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어야 한다고. 새해에는 더 나은 나를 발견하고, 변화 속에서 더욱 풍요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거울을 보자. 그리고 거울 속의 자신과 진솔하게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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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