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의림지 특집 3.

의림지의 문화재 관리

의림지에는 역사만큼 이야기와 문화재가 산재해 있지만 첫 번째 언급할 역사는 우륵과 관련된 것이다. 

우륵이 의림지를 축조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의림지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1871년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우륵당은 의림지 동쪽 석봉에 있다. 그 위에 우륵이 와서 거처하였던 곳이다[于勒堂在義林池東石峯之上于勒來居之所]”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사람들이 말하길 우륵이 의림지를 처음으로 쌓았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이 우륵을 제사 지내 그 공을 보답하는 곳이다”라는 기록도 전하고 있다. 악성 우륵이 우륵당에 춘추로 향사(享祀)되어 조선 영조 때까지 유지하여 왔다는 기록이 있으나 없어진 연대는 알 수가 없고 옛 터만 남아 있었다.

이런 기록을 가지고 있음에도 의림지 초입에 존재하던 우륵샘과 그 위에 있던 우륵당은 이제 사라진 문화재가 되었다.



우륵당 자리는 양쪽 능선이 만나는 협곡에 있었다. 1960년대 홍사구(洪思九)[1878~1896]의 묘를 제천시 하소동에서 이곳으로 이장하면서 양쪽으로 석축을 쌓고 평토 작업을 하면서 우륵당 터가 훼손되었다고 고 최병찬 선생이 증언했다.  현재의 우륵당 터는 약 100여 평(360~440㎡)의 면적만 남아있는데 이마저 도로를 확장하면서 접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했다.


▲ 오른쪽 진입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면서 우륵당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없다. 혹시 길을 만드는가 싶어 물어보니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만든다고 한다.

▲ 우륵샘이 있던 자리, 공사하는 사람들이 물을 받아놓고 사용하고 있었다. 역사성을 갖춘 문화재가 사라지는 현장을 사진으로 남긴다. 

우륵은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 사람이다. 최근  청풍 승평계(1893년 제천 청풍면에서 민간 주도로 창단한 국악연주단, 청풍승평계는 ‘청풍 지역 사람들이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만든 예술 단체’란 뜻을 담고 있다.)의 발굴을 통해 의림지와 청풍 음악의 뿌리가 드러나는 것을 보면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특히 사열성현(청풍의 옛 이름)이라는 지명에서 보듯 우륵과 관련된 자료들이 있어 제천시는 현존하는 문화자원도 활용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 우륵봉은 깍여서 원형이 사라졌다. 이상천 전 시장은 문화재 원형을 훼손하면서 도로를 확장했다. 

   

의림지 주변에는 우륵당 외에도 우륵샘, 우륵봉, 우륵대, 우륵단 등 우륵과 관련된 유적이 산재해 있다.


▲ 전혀 엉뚱한 곳에 샘터를 조성하고 우륵샘이라고 이름지어서 홍보하는 제천시, 문화유적에 대한 기본 인식이 아예 없다.  

문헌 기록들을 중심으로 각 유적지의 위치를 규명하고 우륵당을 우륵의 성소로 정비하면 교육, 문화 자료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천시 문화 예술 담당자는 우륵단이나 우륵대의 위치도 모르고 있는 현실이다.

  

▲ 우륵이 거문고를 연주했다는 우륵대 전경

▲ 문헌에도 없는 우륵정을 건립한 제천시, 오른쪽 바위를 우륵대로 소개하는 문화유적 조작까지 하고있다.  진짜 우륵대는 버드나무 아래에 있는 바위다.

▲ [참고문헌] 『문화유적분포지도』-제천시(충북대학교 박물관, 2003) 『제천시지』(제천시지편찬위원회, 2004) 『제천향토사료집』(제천문화원, 2008)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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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수 기자 다른기사보기